도시의 모습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요?

정치인, 행정가, 사업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맹그로브를 설계하기 위해 일본의 도시를 답사하던 중, 도시의 변화를 만드는 일상의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조성익  Sungik Cho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  TRU 건축사 사무소 대표

무작정 떠난 일본으로의 답사

사회 초년생을 위한 커뮤니티 주거는 국내에서 좋은 사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정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어진 공간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을 확인하려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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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지역이 만나는 곳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백패커스 재팬'에서 운영하는 도쿄의 'Nui. 호스텔 & 바 라운지'입니다. 이곳은 일본을 방문한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입니다. 1층에는 누구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라운지가 있는데, 여기서 지역 주민들과 전 세계의 배낭여행객들이 모여 듭니다. 낮에는 여행 일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밤에는 술을 함께 마시며 파티를 엽니다. 작은 테이블을 곳곳에 배치해서 하루종일 방문자들의 우연하고 잦은 스침이 일어납니다. 여행객들의 공간이지만 마을 커뮤니티 시설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이 곧 명함

이 공간을 안내해 준 사람이 백배커스 재팬의 COO 토모코 씨입니다. 그녀가 건낸 명함 뒷면에는 이런 글귀가 씌여있습니다.

"모든 경계선을 넘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을."

도쿄의 사람들이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큰 꿈을 실천하기 위해 꼭 거대한 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쾌한 공간을 만들어두는 일 하나로, 동네의 풍경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Nui. 호스텔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세탁소는 마을의 중심

토모코 씨가 커뮤니티 공간을 만드는 철학을 더 배우고 싶다면 꼭 방문해보라며 추천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치토세 마을에 있는 세탁소와 카페가 결합된 '킷사 란도리'입니다.

낮 시간에는 세탁을 하러온 엄마와 아이들이 모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동네 친구들과의 놀이 공간이 되고, 엄마들에게는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휴식 공간이 됩니다. 저녁이 되면 퇴근한 사람들이 세탁 바구니를 들고 모입니다. 세탁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옆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됩니다.

​마을에 실천한 철학

킷사 란도리를 운영하는 다나카 씨의 명함에도 글 한 줄이 쓰여 있었습니다.

"1층 만들기는 마을 만들기"

건물들의 1층이 활성화되어야 좋은 마을이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1층을 바꾸기 위해 그녀가 한 일은 도시 계획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 1층 세탁소를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탁소를 지역의 구심점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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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바꾸는 사람들

도시라는 거대한 조직은 한 개인이 움직이기에는 불가능한 대상으로 보입니다. 행정가의 정책 혹은 대기업의 자본이 아니면 바꾸기 힘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을 통해 발견한 것은 도시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자신의 철학을 도시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도시 변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1인 주거는 한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세우고, 이를 위한 작은 대안을 실천한다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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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라는 철학

이 집의 이름인 맹그로브의 의미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열대 식물인 맹그로브는 얕은 바다에 숲을 이루고 자랍니다. 얽히고 설킨 독특한 뿌리의 모양 덕분에 다양한 물고기, 게, 소라가 들어와서 살기 좋습니다. 다양한 종과 개체가 뿌리 사이에서 공존하는 바닷속 아파트입니다. 독립했지만 유대감이 필요한 1인 가구 주거에 딱 맞죠. 누구나 고유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받으며 건강하게 함께 살 수 있게 한다는 "맹그로브"라는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