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 스태프들에게 보내는 월요일 아침의 메세지 입니다.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 TRU 대표 건축사
조선의 백자라 하면, 으레 국보급 유물이 떠오르겠지만 실은 당대의 사람들이 밥을 담아 먹던 생활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감상을 위해 만든 백자와는 달리, 밥을 담아먹는 사발은 딱히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는 않았는데,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밥이 닿는 사발의 안쪽 면은 공을 들여 매끈하게 만들었지만, 기능과 별로 상관없는 사발의 아래 부분, 즉 '굽'은 울퉁불퉁하게 놔뒀죠.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마에서 그릇을 구울 때 겹쳐서 쌓아둔 그릇들이 서로 붙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합리적인 설명이 꼭 필요한가요. 필요한 부분만 공을 들이고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의 멋을 추구한 작위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정이 갑니다. 거친 굽과 매끈한 몸통이 만드는 텍스쳐의 대조도 아름답고요. 오히려 일본인들이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보고 국보로 삼았다고 하네요.
사발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고민해왔던 문제, 디자이너의 '자의식 과잉'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내 디자인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너무 의식하고 일을 하면 필요없는 부분까지 과하게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이런 자의식 과잉이 반영된 그릇은 먹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부담감을 전달하게 됩니다. 매끈하고 흠 없이 아름다운 조선 백자에 밥을 담아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손이 떨려서 소화가 될리 없죠.
그러고보니, 살짝 틀어진 모양의 달 항아리도 그렇고, 아무렇게나 휘어진 나무를 지붕 받침대로 쓴 선암사 해우소도 그렇고, 눈길을 끌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대상들은 어느 한 구석에 살짝 허점을 지니고 있어요. 디자이너가 만드는 과정에 '이건 이거대로 좋잖아'라며 받아들인 약간의 허점이 들어있는 것이죠.
빌허虛, 점점點. '비어있는 이 한점'을, 건축의 설계에는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를 생각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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