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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앤 페이스트


글: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 TRU 대표 건축사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데이빗 칼슨이 주는 교훈은 '가위와 풀'입니다.

데이빗 칼슨은 기존의 그림을 오리고 붙여서 만든 소위 '그런지' 타이포그래피의 창시자 인데요. (Grunge: 그런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하는 복장 형태로 보통 깔끔하지 못한 헌옷 같은 옷을 입는 것) 그는 프린트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가며 디자인 작업을합니다. 컴퓨터 화면 위에서 컷 앤 페이스트를 하는게 아니라 '리얼 월드'에서 그 일을 하는 거죠. 컴퓨터 화면에서 오리기+붙이기 명령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오히려 이런 실제 가위와 풀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주저하게 된 것 같습니다.



건축에서는 모형 만들기가 데이빗 칼슨의 오리고 붙이는 방식에 해당합니다. 내 손으로 썰고 붙이고 허물고 다시 짓으면서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것이죠. 하지만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니, 모형을 만들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 스튜디오에서도 모형 만들기를 등한시 하고 있는 실정이네요.


TRU

TRU의 스터디 모델


가위와 풀의 방법이 컴퓨터 시대에 맞는 방법이냐는 논외로 하고, 저는 가위와 풀이 가진 '혼돈의 힘'에 창작의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어 놓고, 자르고, 어지럽히고, 정리했다가 다시 찢어내는 혼돈이 가진 창조의 힘. 우연히 잘라낸 한 조각을 의외의 부분에 붙였을 때 발견하는 만족감.


디스플레이의 매끈한 화면에 익숙한 우리는 점점 더 이런 혼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데이빗 칼슨의 마스터 클래스 소개 영상을 보세요